식물 없는 세계에서
서평
책 <식물 없는 세계에서>는 식물이 자라지 않는 세계라는 제목을 보며 나는 곧바로 황폐한 지구를 떠올렸다. 푸르름이 사라진 세상, 나무, 풀, 꽃 같은 자연의 모습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황량한 대지. 이런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상상 속에서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은 오직 맨땅이거나 딱딱한 아스팔트뿐인 세상이다. 그런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눈에 띄는 그 어떤 녹색의 생명도 없다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음산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평소 자연이 주는 평안함과 따뜻함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심정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소설의 표지를 보면, 커다란 나무 위에서 잠든 소녀가 등장한다. 그 소녀는 혹시 자연이 사라진 세상에서 꿈속에서나마 나무를 만나는 걸까? 나무의 거대한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있는 모습은 소녀가 그리워하는 자연의 상징처럼 보인다. 이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식물 없는 세상에서 자연을 잃은 사람들의 절실한 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멈춰 섰던 부분은 목차였다. 일반적으로 책은 각 장마다 제목을 붙여 독자에게 그 내용의 핵심을 전달하는데, 이 책은 전혀 다르게 숫자만 나열되어 있었다. 단순한 숫자로만 표기된 26개의 장들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제목 없이 숫자로만 표현한 것은 독자가 각 장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아내도록 유도하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이 자라지 않는 세계는 미래 지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인간들은 이제 더 이상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하고, 한정된 지역에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은 주거 지역, 학교, 식물병원, 협동농장, 통신국, 씨앗 도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래의 도시 풍경은 인간이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기능적인 공간들만 남겨둔 모습이다. 이 미래 사회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호칭 대신 이름으로 부른다. 할머니, 선생님, 심지어 나이 많은 어른들까지도 이름으로 불린다. 이런 설정은 권위적인 관계를 없애고, 사람들 간의 친밀감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인간 관계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이언은 학교에서 식물을 키우는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실패하고, 결국 유급 위기에 처하게 된다. 미래 사회에서도 여전히 식물 재배는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며, 이언은 여러 번 실패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한다. 엄마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을 하며 따로 지내고 있고, 이언은 새아빠와 함께 생활한다. 가족 구성 역시 우리가 익숙한 형태와는 다르지만, 새로운 형태의 가족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언은 식물을 살리기 위한 도전에 몰두한다.
이언이 살고 있는 협동농장은 오염된 토양에서 식물을 키우는 문제로 큰 갈등을 겪고 있다. 이언의 할머니는 오염된 토양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고, 씨앗 도서관에서 일하는 영린은 연구를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는 쪽이다. 그들은 한때 친밀한 관계였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입장으로 인해 갈등을 빚고 있다. 이 갈등은 단순한 개인 간의 대립을 넘어 미래의 식량 문제와 지구 환경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설정은 독자에게 중요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오염된 환경 속에서 다시 생명을 키워낼 수 있을까?
이언은 씨앗 도서관에서 식물을 돌보는 선배 수린과 친구 우현이와 함께 식물 재배에 도전한다. 미래의 황폐한 환경 속에서도 식물을 키우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따뜻한 감동을 준다. 이들의 이야기는 식물이라는 생명을 통해 인간의 의지와 연대를 보여주며, 이러한 과정에서 이언은 생명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또한 이언이 어려움 속에서도 실패를 극복하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독자에게 큰 교훈을 준다.
소설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마을이 약탈자들에게 공격받는 장면이다. 미래의 세상에서 인간들은 극한의 생존 환경 속에서 자원을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 약탈자들은 마을의 작물을 훔쳐 가며 사람들을 위협하고, 이에 맞서 마을 사람들은 식물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은다. 이 사건은 단순한 생존 문제를 넘어 인간의 협력과 공동체 의식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함께 힘을 모으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언의 엄마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화상통화를 통해 이언에게 계속해서 격려를 보낸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도 이언은 계속해서 자신이 맡은 식물 재배 과제를 수행하며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마을은 약탈자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희망을 되찾는다. 땅에서 식물이 자라나는 기적 같은 순간이 마을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선사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미래의 지구가 정말 이렇게 황폐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자연의 중요성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환경 오염으로 인해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존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를 돕고 연대하면서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이다.
소설 속에서 만난 웨이 아저씨는 약탈자들의 공격을 피해 이언의 마을로 도망 왔지만, 그 이후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하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의 두려움은 그를 앞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하지만 이언은 웨이 아저씨가 보낸 편지를 통해 다시 한 번 희망을 얻는다. 아저씨는 이언이 돌보던 식물이 죽지 않고 새로운 잎을 틔웠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그 한 줄의 편지가 이언에게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 중 하나는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는 죽어가던 것들도 다시 살아난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식물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햇볕 같은 작은 희망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책을 덮으며 나는 자연의 소중함과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흔히 지나치기 쉬운 식물들이 사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생명력과 희망을 주는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식물이 자라지 않는 세계는 단순히 미래 지구의 황폐함을 그린 이야기 그 이상이다. 이는 인간이 직면하게 될 환경 문제, 생명에 대한 가치, 그리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깊이 있게 다룬 소설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사라지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 책은 미래에 대한 경고와 함께, 우리에게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