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

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

트레이시 슈빌리에 장편소설


서평

<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 책을 읽다 보면 가끔씩 그런 책들과 그런 작가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무작정 좋은 책으로 느껴지거나, 단번에 마음에 드는 작가들이죠. 트레이시 슈빌리에는 저에게 그런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작품 덕분이었습니다.

진주 귀고리 소녀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유명한 그림을 소재로 한 일종의 팩션 소설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상상력을 가미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부러 읽지 않고 있습니다. 저에게 진주 귀고리 소녀는 마치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마지막에 먹고 싶은 그런 심리를 자극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표지에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제가 사랑하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페르메이르의 그림이니까요. 그림과 소설,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상상이 결합된 작품이 저에게 얼마나 큰 매력으로 다가왔을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언젠가 이 작가의 책을 전부 소장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역시 최대한 나중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최신작을 읽게 되는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기대도 컸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탐구하고 싶었으니까요.

이번 소설은 19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여성 화석 수집가이자 고생물학자인 매리 애닝과 엘리자베스 필폿이라는 두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매리 애닝은 실제로 고생물학계에서 중요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화석 종을 발견해 고생물학 분야에 큰 기여를 했지만,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인물이죠. 엘리자베스 필폿 또한 실존 인물로, 주로 물고기 화석을 연구한 고생물학자였습니다. 이 소설은 이 두 여성의 우정과 학문적 탐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엘리자베스는 변호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젠트리 계급에서 유복하게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녀는 언니와 여동생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영국 남부 해안의 라임 리지스라는 마을로 이사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엘리자베스는 매리 애닝을 만나게 되고, 서로 화석을 발굴하며 우정을 쌓아가게 됩니다. 이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단순한 동료 관계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한 친구로 발전하게 되죠.

매리는 어릴 적 번개에 맞은 적이 있었는데, 이 경험이 그녀의 관찰력과 집중력을 더욱 키워주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남다른 재능으로 익티오사우루스(Ichthyosaurus)라는 공룡 화석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회는 종교적 신념이 강한 시대였으며, 교회는 여전히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창조론이 지배하던 시기에,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멸종된 공룡 화석을 발견한 것은 큰 충격을 주었죠. 더욱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어린 소녀가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계급적 장벽도 컸습니다. 매리 애닝은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고, 여성으로서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기 어려운 시대에 살았습니다. 엘리자베스 필폿 또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학자들로부터 차별을 받았지만, 그나마 매리와는 다른 계급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녀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화석을 매개로 끈끈해졌지만, 그 사이에 사회적 차별과 학문적 인정 문제로 인해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두 여성의 우정과 고생물학적 발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당대 여성들이 겪었던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 그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와 매리는 결국 화해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며 우정을 다시 이어가게 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 인간 관계의 복잡함과 사회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저는 이 책이 21세기에 쓰인 작품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19세기 초반 영국 시골 마을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묘사된 점에 감탄했습니다. 특히 라임 리지스의 해안 절벽과 바람이 부는 풍경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영국 북부의 황량한 구릉지와 영국 남부의 절벽으로 둘러싸인 바닷가는 지리적으로는 다르지만, 비바람과 회색빛으로 물든 우울한 분위기는 둘 다 비슷한 정서를 자아냅니다.

또한, 이 소설은 실존 인물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작가는 책의 마지막에 이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나눈 대화는 상상에 의해 쓰인 것이겠지만, 그들이 그런 대화를 나눴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소설의 진정한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왜 이렇게 마음에 드는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깊이 탐구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 예술, 과학, 역사가 어우러지며, 시대를 뛰어넘는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베니스의 개성 상인, 다빈치 코드, 렘브란트 블루와 같은 작품들이 모두 저에게 큰 감동을 준 것처럼,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도 저에게는 그런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저는 아마도 이런 역사적 팩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진 이야기가 저를 끌어당기며, 실제로 있었던 인물들의 삶을 통해 그 시대의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을 들여다보는 것이 저에게는 큰 즐거움입니다. 앞으로도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작품들을 천천히 하나씩 읽어 나가는 것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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