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대학의 조센징

제국대학의 조센징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저자 정종현

 

 

 

 

도서서평

<제국대학의 조센징> 서점을 거닐던 중 시선을 사로잡는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은 강렬하게도 ‘조센징’이었습니다. ‘조센징’은 ‘조선인’의 일본어 발음으로, 한국인에게는 불쾌하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저자가 이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충격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실제로 그 목적은 성공한 듯, 이 책은 제 시선을 단숨에 붙잡았고,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책 뒷표지의 소개글을 읽어보니,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 유학을 간 조선인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일본의 그림자와 그 뿌리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저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저자의 방대한 자료 조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감상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이 아닌, 철저한 고증과 연구를 통해 구성된 이 책은 논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저자가 일본 제국대학에 유학 간 조선인들의 발자취를 세세히 추적하며, 그들의 경험과 선택이 어떻게 현재 한국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 유학을 떠난 조선인들이 어떤 생각으로 일본으로 향했으며, 그들이 학업과 생활을 통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에 맞서 조국을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유학길에 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에서는 제국대학을 다닌 조선인 유학생들 대다수가 ‘출세’를 선택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출세를 선택한 것만으로 그들을 비판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본에 도착해 일본어로 교육받고, 일본 문화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처음의 결심이 흐려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고국을 위한 신념이 점점 희미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출세 대신 조국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남습니다.

 

제국대학에 다니면서 일본인 교수들과 교류를 맺은 유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일본인 교수들 중에는 조선인 유학생을 친일 엘리트로 길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겠지만, 그들 사이에는 학문적, 정서적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식민지 지배라는 복잡한 역사적 배경을 떠나, 순수한 배움의 자리에서는 차별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유학생들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 교수들은 조선인 유학생들을 통해 조선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유학생들은 일본 학문을 접하며 지적 성장을 이루는 순수한 학문적 교류가 이루어진 순간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에 스며들어 친일적인 경향을 보인 유학생들이 있었던 반면, 이에 굴하지 않고 일본에 대항하는 이들도 존재했습니다. 타협이 쉬웠던 시대적 환경 속에서 저항의 뜻을 관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큰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러한 선택을 한 유학생들에 대한 경외심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또한, 제국대학에서 유학을 했던 조선인들 중에는 여성 유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여성이 학문을 배우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에 유학을 갔다는 점은 놀라운 일입니다. 적은 수의 여학생이었지만, 이들은 해방 이후 남북한의 교육, 과학, 문학예술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며 남다른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들이 지식과 학문을 향한 열망으로 겪은 고난과 노력은 그 시대의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 보입니다.

 

유학생들 중에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닌 가난한 고학생들도 있었고,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학업을 이어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인 유학생들을 지원한 것은 친일 엘리트 양성을 위한 투자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지원이 일본에 반하는 세력을 키울 위험성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본은 그 가치를 충분히 판단해 이러한 투자를 단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일본을 위해 살았던 것은 아니며, 해방 이후 자신이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남북한 사회에 기여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해방 이후,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당시에는 구체적인 방안이나 행정 조직이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 조선 관료 출신들이 행정 업무를 맡게 되었고, 친일파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나라의 기초를 쌓는 과정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제국대학 유학생들은 조선 총독부의 관료가 되었고, 해방 후에는 남북한의 법과 국가 기초를 쌓아 올리며 현대까지 이어지는 영향을 미쳤습니다. 친일파의 존재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오늘날, 이들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들은 어쩌면 한국 역사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톱니바퀴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마지막에는 도쿄와 교토 제국대학에 유학한 조선인 유학생들의 명부와 해방 전후 그들의 이력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저자가 이 부분에 공들인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책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들어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제국대학 유학생들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을 내리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들이 만약 옳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조선인 유학생들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수행한 존재들입니다. 책을 덮으며 일본이라는 나라의 치밀함과, 조선인 유학생들에게 뿌리내려 지금까지도 우리 삶 속에 남아 있는 제국의 영향력을 다시금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잊고 있던 과거의 흔적을 되돌아보며, 앞으로도 이처럼 역사를 깊이 있게 다룬 책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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